
저 예전에 마트 갈 때마다 꼭 예산을 넘었습니다. 5만 원만 쓰려고 들어갔다가 나오면 8만 원이었습니다. 분명히 필요한 것만 샀는데 어떻게 이렇게 되지 싶었습니다. 냉장고는 꽉 찼는데 막상 저녁 차리려면 없고, 세 아이 반찬 맞추려다 사다 놓은 게 유통기한 지나서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한 달 식비가 70만 원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40만 원대입니다. 바꾼 건 장보기 전 루틴 딱 하나입니다.
식비가 줄지 않는 진짜 이유
식비를 줄이고 싶은데 잘 안 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외식을 줄이고, 배달을 끊고, 마트 할인 행사만 노렸는데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아끼는 것 같은데 통장 잔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이유가 명확했습니다. 계획 없이 마트에 갔던 것입니다. 배고플 때 가면 다 맛있어 보이고, 1+1 보이면 일단 집어 들고, 애들이 옆에서 사달라고 하면 못 이기고. 그렇게 카트가 채워졌습니다. 할인 상품을 샀는데도 지출이 늘어나는 아이러니가 반복됐습니다.
여기서 식품 로스(Food Loss)란 구매 후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식재료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사다 놓고 못 먹고 버리는 것입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가정에서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의 약 70%가 유통기한 초과 및 과잉 구매로 인한 것입니다(출처: 환경부).
즉, 식비 낭비의 상당 부분은 마트에서 너무 많이 사는 데서 시작됩니다.
집에 뭐가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갔으니 있는 것도 또 사고, 결국 냉장고에서 까맣게 잊혀졌습니다. 사온 두부가 또 있는 줄 몰랐고, 파프리카는 한 봉지가 이미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식비는 줄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는 쌓였습니다. 식비를 줄이려면 마트에서 아끼는 게 아니라, 마트 가기 전에 이미 결정이 나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장보기 전 10분 루틴 공개
지금 제가 장보기 전에 하는 루틴입니다. 10분이면 충분합니다. 거창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만 합니다.
- 냉장고 확인 (3분) — 냉장고 문 열고 남은 재료 사진을 찍습니다. 머리로 기억하려 하면 마트 안에서 다 잊어버립니다.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 이번 주 저녁 메뉴 5개 정하기 (5분) — 완벽하게 안 해도 됩니다. 저녁 메뉴만 대충 정합니다. 예: 월-된장찌개, 화-볶음밥, 수-미역국, 목-제육볶음, 금-카레. 점심이나 아침은 냉장고 있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 구매 리스트 작성 (2분) — 식단에 필요한 재료에서 냉장고 사진에 있는 것을 빼고 리스트를 만듭니다. 이것만 삽니다. 리스트 외에는 넣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규칙은 딱 하나입니다. 리스트에 없는 건 안 삽니다. 1+1이어도, 세일이어도, 오늘만 특가여도 예외 없이입니다. 처음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안 먹으면 결국 버리는 게 더 아깝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 식단 계획(Meal Planning)이란 일정 기간의 식사 메뉴를 미리 정하고 그에 맞는 재료만 구매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거창한 다이어트 식단이 아니어도 됩니다. 이번 주 저녁에 뭐 먹을지 대충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장보기 패턴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장보기 전 구매 리스트를 작성하는 가정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식비 지출이 평균 23%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처: 한국소비자원). 리스트 하나가 만드는 차이입니다.
실제로 달라진 것들
이 루틴을 시작하고 첫 달에 식비가 15만 원 줄었습니다. 특별히 더 아낀 것도 없고, 반찬 수준을 낮춘 것도 아닙니다. 그냥 계획하고 갔더니 줄었습니다.
재료를 버리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냉장고 사진을 찍고 식단을 짜다 보니 남은 재료를 먼저 소진하는 방향으로 메뉴가 정해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냉장고 파먹기가 됐습니다. 마트 체류 시간도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리스트 있으면 목적지만 가고 나오면 되니까요.
변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월 식비 70만 원대 → 40만 원대로 감소
- 음식물 쓰레기 눈에 띄게 줄어듦
- 마트 체류 시간 절반 이하로 단축
- 충동구매 거의 사라짐
- 냉장고 관리가 훨씬 수월해짐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만 대형마트 가고, 중간에 필요한 것만 동네 마트에서 소량으로 삽니다. 대형마트를 자주 가면 그만큼 충동구매 기회가 늘어납니다. 방문 횟수를 줄이는 것 자체가 식비 절약의 방법이 됩니다.
오늘 저녁 마트 가기 전에 냉장고 사진 한 장만 찍어보십시오. 그것만 해도 오늘 장보기가 달라집니다. 계획 없이 가면 냉장고는 채워지는데 지갑은 비어버립니다. 10분이 한 달 식비를 바꿀 수 있습니다. 대단한 절약 비법이 아니라 그냥 순서를 바꾸는 것뿐입니다.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재무 조언이 아닙니다.참고: 환경부 / 한국소비자원